항존주의는 진리는 시대와 문화를 초월하여 존재한다는 철학적 전제에서 출발하며, 교육의 목표는 이러한 항구적 진리를 가르치는 데 있다고 봅니다. 고전 문헌과 정신적 수양을 중시하는 이 사조는 현대 교육에서 실용주의와 진보주의의 흐름과 대조를 이루며 학문 중심 교육과 교양 교육의 정당성을 제시합니다. 본 글에서는 항존주의 교육철학의 핵심 개념과 대표 학자들의 사상을 정리하고, 이 철학이 오늘날 교육에 던지는 함의와 비판점을 함께 탐구하고자 합니다.
항존주의의 철학적 기반과 교육관
항존주의는 인간 존재의 본질과 진리를 탐구하는 전통적 철학에 기반한 교육사조로, 진리는 역사나 사회적 변화에 따라 상대화되지 않는다는 관점을 중심에 둡니다. 이는 실용성과 변화를 강조하는 진보주의적 관점과는 뚜렷한 대조를 이루며, 인간의 이성과 정신은 고정된 진리를 이해하고 내면화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존재라고 전제합니다. 이러한 철학적 기반에서 항존주의는 교육의 목적을 일시적 유행이나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기능적 인간의 양성이 아니라, 이성적 사고와 정신적 훈련을 통해 ‘인간다움’을 실현하는 데 두고 있습니다.
항존주의자들은 교육이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니라 인간 정신의 고양을 위한 활동임을 강조하며, 인간의 본질적 질문들―존재란 무엇인가, 선이란 무엇인가,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성찰을 교육의 핵심 과제로 제시합니다. 이들은 교육을 통해 학생이 단순히 사회에 적응하는 존재가 아니라 진리를 인식하고 도덕적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이성적 존재로 성장해야 한다고 봅니다. 특히 교양 교육과 인문학 중심의 학문 탐구는 이러한 목적을 실현하는 주요 수단으로 간주되며, 고전 읽기와 토론, 논리적 추론 훈련을 통해 학생은 자신의 정신세계를 계발하게 됩니다.
항존주의는 인간의 본성과 보편적 가치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교육 내용 또한 보편성과 항구성을 띤다고 봅니다. 이에 따라 커리큘럼은 수학, 철학, 문학, 과학 등 인류가 오랜 세월에 걸쳐 축적해온 고전적 지식과 사상을 중심으로 구성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는 교육이 도구적 기능을 넘어 인간 정신의 고양과 진리 추구의 수단이 되어야 한다는 철학적 입장을 반영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항존주의는 단순한 교육 방법론이 아니라, 인간 존재와 학문의 의미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담고 있는 깊이 있는 교육철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들러와 허친스의 교육사상
항존주의 교육철학의 대표 학자로는 로버트 허친스와 모티머 아들러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두 사람은 20세기 중반 미국 교육계에서 항존주의적 이상을 바탕으로 교육 개혁을 시도하며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먼저 시카고대학교 총장을 역임한 허친스는 고등교육에서 고전 중심의 교양 교육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는 ‘학문은 시대를 초월한 진리를 탐구하는 활동’이라는 전제하에, 교육은 전문화되기 전에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사고능력을 계발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대학의 기능은 직업 교육이 아니라 인간 정신의 훈련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허친스는 고전 읽기를 교육의 핵심으로 삼고, ‘위대한 책들’이라는 개념을 통해 서구 문명의 정수로 평가되는 철학·문학·정치·과학 등의 고전을 교육과정에 도입할 것을 제안하였습니다. 이러한 고전 중심의 교육은 학생이 시대의 유행에 흔들리지 않는 정신적 기준을 갖도록 돕고, 삶의 본질적 문제에 대해 비판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힘을 기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교육의 목적을 “삶의 의미에 대한 이해와 인간 존재의 본질에 대한 성찰”로 규정하였으며, 이는 당시 유행하던 실용주의 교육의 흐름과는 전혀 다른 방향이었습니다.
허친스와 함께 활동한 아들러는 항존주의 교육의 이론적 틀을 더욱 체계화한 인물입니다. 그는 인간은 이성적 존재이므로 교육은 논리적 사고력과 도덕적 판단력을 길러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며, ‘자유교육’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교육과정을 설계하였습니다. 아들러는 초등교육부터 고등교육까지 모든 교육 수준에서 항구적 진리를 다루어야 한다고 보았으며, 교육은 인간의 ‘성숙’과 ‘지혜’에 도달하는 과정을 돕는 활동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는 또한 현대 사회의 교육이 지나치게 기능적이며 단기적 목표에 치우쳐 있다고 비판하며, 진정한 교육은 인간의 정신적 자유를 가능케 하는 보편적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라고 역설하였습니다.
이 두 학자는 항존주의 교육철학을 구체적인 제도와 교육과정으로 실현하려 하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갖습니다. 이들의 사상은 오늘날에도 교양 교육, 인문 중심 교육, 고전 교육 등의 논의에서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인간 교육의 본질에 대한 성찰을 지속적으로 요청하고 있습니다.
항존주의 교육철학의 현대적 의의와 비판
항존주의 교육철학은 정보화와 기술 중심의 교육 환경에서 잊혀지기 쉬운 인간 정신의 본질을 되짚는 데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현대 교육은 빠른 변화와 실용성, 경제적 효율성을 중시하는 경향을 보이며, 이로 인해 교육의 목적이 인간 전인적 성장보다 단기적 성취나 기능 습득으로 축소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와 같은 흐름 속에서 항존주의는 교육의 중심에 ‘진리 추구’, ‘지혜의 성숙’, ‘정신의 훈련’이라는 본질적인 가치를 다시금 상기시킵니다. 특히 오늘날 교양교육이 약화되는 현실 속에서 항존주의가 강조하는 고전 읽기와 비판적 사고 훈련은 교육의 본질 회복을 위한 유효한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항존주의 역시 여러 비판에 직면해 있습니다. 가장 큰 비판은 지나치게 고전 중심적이며, 비서구 문명이나 다양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허친스와 아들러가 강조한 고전 목록은 주로 서구 백인 남성의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는 다문화 사회나 포스트모던 교육환경에서는 제한적으로 수용될 수 있습니다. 또한 항존주의가 강조하는 진리의 항구성 자체가 상대주의적 가치관이 지배하는 현대 사회와는 조화를 이루기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 다양한 진리와 삶의 방식이 공존하는 오늘날, 하나의 ‘절대적 진리’를 중심으로 교육을 구성하는 접근은 시대착오적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존주의는 교육이 인간의 정신을 계발하고, 삶의 본질을 탐색하는 활동임을 강조하는 데 여전히 유효한 철학입니다. 특히 인공지능 시대와 같이 기술이 인간의 사고와 판단을 대체하려는 시대일수록, 인간 고유의 이성적 사고, 도덕적 성찰, 의미 있는 삶의 탐색은 교육의 본질로 되돌아가야 할 과제입니다. 항존주의는 이와 같은 근본적 질문을 다시 제기하고, 교육의 철학적 기반을 회복하려는 노력 속에서 지속적인 탐구의 가치가 있는 이론이라 할 수 있습니다.